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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6/04 Focus on detail - Star Trek The Beginning
- 2009/03/24 최인훈 <화두>
"인간의 오늘은 어제의 부활이며 윤회이다 오늘의 자신이 어제의 자신과 동실시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기억이다."
-서문 中에서
...한 사람에 몸뚱아리가 하나씩밖에 없다는 것이 인간의 불행의 뿌리였다. 다른 자기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고 몸의 일부인 마음에 새겨져 있다는 것. 그런데 그 몸은 지금 다른 마음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예전의 마음을 섬길 수 없다는 것. 짐승들이 모르는 사정이다. 그것이 차츰 형성된 나의 생각이었다.
이 생각이 내가 차츰 희곡과 연극에 기울어진 까닭이기도 하였다. 소설을 쓸 때 등장 인물들의 마음과 육체의 불일치는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어도 서술자가 잘 삭여서 독자가 탈없이 받아들이게 돌봐준다. 그것이 <지문(바탕글)>이다. 희곡에는 이 <바탕글> 이 없다. 눈에 보이는 배우의 몸, 그 몸의 움직임, 들리는 말 - 이것들이 그대로 바탕글이기도 하게 된다. 소설에서는 벌어지는 모든 일의 중심인 서술자의 간섭으로 충격은 시시콜콜 설명되고 따라서 완화된다. 연극에서는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 마음과 몸뚱아리의 어긋남은 피할 길 없이 드러난다. 같은 몸뚱아리에 두 마음이 겹쳐 있는 것이 보인다. 짐승이기도 한 사람은 그것이 충격이다. 일편단심이니,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는 불경이부라는 식으로 인간의 짐승의 감각 가깝게 인간의 규칙을 표현하려고 애를 쓴다. 그 원칙을 굽히지 않은 사람들을 우러러 모신다. 그러나 우러러 볼만한 사람들은 언제나 예외자다. 그들은 번듯하게 육신을 가졌으면서도 실은 사람들의 꿈이 화신한, 살아 있는 꿈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꿈으로서> 살지는 못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 사람은 늘 그렇게 말하면서 산다. 사람은 짐승으로 태어나서 끝도 한도 없는 <사람>으로 다시 자기를 만들어가면서 사는 것이었다...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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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무라 가오루의 'Skip'에서는 열 일곱 살에서 갑자기 25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자신으로 변해버린 여주인공, 이치노세 마리코가 등장한다. 기억상실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의식이 시간을 뛰어넘은 것이다.
존재의 근거라는 것 또한 또렷하지 못한 스스로의 기억일 뿐이다. 나역시 때때로, 스물일곱이라는 나이는 몸뚱아리에만 새겨저 있는 듯한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내게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의 기억들은 일관성있게 이어져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드문 드문 산재해 있는, 의식의 조각에 불과하다. 어느 순간 눈을 떠 보니, 25년 후의 전혀 새로운 내가 되어 있다는 느낌. 앞만 보고 달리다 그림자조차 잃어버린 자신이,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느낀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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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도 아마 깊은 연극적 감동을 경험했으리라. 그러나, 적어도 내 경험으로, 이야기로 읽었을 때와 내 손으로 희곡을 써본 것 사이에는 큰 다름이 있었다. 희곡으로 써보고서야 비로소 <이야기>의 깊이를 알았다고 하면 틀리지 않는다. 오늘의 우리들에게는 무엇인가 그만한 것이 닳아져 있다. 그것을 되살리는 노력이 있어야 했다. 영혼의 기능 마비를 다스릴 재활의학 같은 것, -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설명했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주어진 생물학적 기능의 마비에 대해서만 통하는 설명이다. 신화나, 전설은 생물학적으로 이해할 주어진 기능이 아니라, 인간이 짐승에서 <인간>이 되기 위해서 창조한 <제2의 감각>이다. 그것은 배우지 않으면 <없고>, 배워야만 <있게 되는> 인간의 인공 기능이다. 인공기능의 뿌리는 <영혼>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짐승들이면 다 가지고 있는 <감각>이다. 감각은 가만히 놔두면 짐승의 욕심일 뿐이다. 신화적 감각은 <재활>되는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한다. 그것을 만든 옛사람들도 <배워>서 그것을 <자기의 안>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전승>된다는 것은 그 <배움>의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말을 뜻할 뿐이지 재물을 물려받는 것처럼 되지는 않는다.
- p.158
...제길 될 대로 되겠지, 인형이 좀 어떠면 세상이 큰일 날까, 이렇게 통이 크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런 쟁이들 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치 때문에 우주가 삐뚤어진다고 생각하기로 한 약속이 연극이다. 한 음정쯤 틀리다고 뭐, 이렇게 생각하는 곳에 음악도 없다. 적어도 남들더러 들어 주십사 하는 일로서의 음악은 없게 된다. 모든 일이 자로 재고 저울로 달린 후에 있을 데 있게 하는 것. 결코 그렇게만은 될 수 없는 세상에서, 구석구석의 먼지까지 황금비례에 따라 있게 하는 것. 그렇게 해서 환상의 현실이 노래가 되게 하는 일. 사람들은 노래를 만드느라고 망치와 드라이버를 들고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 p.189
이 방에 다시 와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아마 그러기 힘들 것이었다. 이 자리는 내가 다니느 학교도 아니었고, 내가 다니는 교회도 아니었고, 내가 근무한 부대 막사도 아니었고, 내가 가르치는 학교도 아니었다. 사람의 평생에는 그러고보면 그런 장소가 따로 있다. 눈 감고라도, 하고 흔히 말하듯이 일정한 인생의 어느 시기에 수없이 오가는 길과 그 길 끝에 있는 장소 - 학교, 예배당, 막사, 직장. 그런 곳에다 사람들은 자기를 조금씩 남기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말해야 좋을지, 아니면 그런 것과 어우러져 그 순간마다의 이른바 <나>가 그때마다 이루어진 연속으로서의 나. 집과 학교 사이에 개미들의 행렬처럼 이어진 나, 나, 나, 나, 나, 나...... 학교에, 예배당에, 막사에 도착하면, 그 마지막 <나>만 남고 다른 나들은 모두 그 마지막 <나> 속으로 마치 개미굴 속으로 들어가는 개미들처럼 차례로 들어와 겹친다. 그래서 마치 작은 구멍만 남는 것처럼, 구멍에 보초처럼 서 있는 마지막 나가 <나>로 통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을지. 이 개미구멍 속의 <나>들이 우리가 <기억>이라 부르는 물건이다. 사람들은 이 물건은 개미구멍 속에 남겨놓고 <말>이라는 지폐로 바꾸어서 편리하게 가지고 다닌다. 그러나 우리에게 뿌리 깊은 현물경제 심리는 기억들은 그 환상의 굴이거나 아니면 도중의 길바닥에 흩어져 떠돌거나 어느 나뭇가지나 담벼락에, 걸어간 복도 한 구석에서 서성거린다고 생각하기를 즐긴다. 나는 이 자리에 남겨 놓고 갈 나를 생각하고 그가 저 혼자 견뎌야 할 시간을 생각했다...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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