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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1 <카지노> - 아사다 지로

<카지노> - 아사다 지로

"원래는 소설가지요?"

"아니, 가끔 소설을 쓰는 갬블러야."

"도스토예프스키도요?"

"그는 가끔 갬블을 하는 소설가였지. 100년이 지나도 이렇게 카페에서 그의 소설을 읽는 사람이 있으니까."

 

소설가와 예술가들이 한결같이 갬블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00년 후까지 작품을 남기려는 의지와 사명감이 그들을 찰나적인 쾌락으로 몰고 간 것일까?

 자신이 죽은 뒤에도 작품을 읽는 사람이 있고 미술관과 콘서트홀을 찾는 사람이 있는 것, 소설가와 예술가에게 그보다 더 간절히 바라는 게 있을까? 하지만 그 정도의 작품을 세상에 남기기 위해서는 인간다운 생활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잠시나마 자기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쾌락 중에 가장 찰나적인 갬블에 몸을 맡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가에게 예술은 감상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미지의 영역이 아니다. 이미 자기 눈으로 확인한 것, 알고 있는 것을 정확히 묘사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한 장의 카드 뒤에 숨겨져 있는 보지 못한 숫자, 미지의 모양에 이상하리만큼 동경을 품는 것이다.

 

-<카지노>, 아사다 지로  P.261

 

"일본에서는 일하는 것이 미덕이고, 노는 것은 죄악이거든. 그래서 카시노를 법률로 금하고 있어."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바덴바덴의 이 욕조에 몸을 담그고 미래에 대해 토론했던 네 명의 일본인이 있었다. 육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들은 육군대학 과정을 마친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그러나 그들이 행복을 확인하는 일을 게을리 하고 죽을 힘을 다해서 노력한 결과는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들이 진지하게 품었던 희망은 야망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에 도스토예프스키와 마크 트웨인은 한 푼도 없는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그들이 남긴 위업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류에게 마음의 양식으로 남아 있다.

 일본 사회는 아직도 놀이를 죄악시하고 있다. 100보 양보한다고 해도 놀이는 노동을 위해서는 필요악이다. 나는 누가 뭐라고 하든, 반세기에 걸친 방탕한 인생을 뒤돌아보아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경애해 마지않는 모리 오가이(소설가, 평론가, 군의관, 1862~1922)는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활동을 보였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에 "뭐가 이렇게 시시해!"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악착같이 일하며 크게 활약하는 것만이 이상적인 인생은 아니리라. 나는 오히려 아름답게 빛나는 인생을 살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즐기며 살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여, 열심히 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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