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을 통한 교육과 신화를 통한 교육
- 분류없음
- 2009/11/22 19:05
Institute of Play Korea에 계시는 피터 리 님의 특강에서
기존의 교육이 일방적인 전달에 의한 학습이라면 게임을 통한 교육은 소통을 통한 학습이라는 말이 공감이 되었다.
그리고 게임에 대한 '신화학'적 접근에 대해서 공부하다 보니 이 두 가지가 이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카자와 신이치의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는 신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내용으로 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보다는 훨씬 쉬운 책이지만 그 내용의 깊이는 뒤지지 않는 것 같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줄곧 신화는 고대의 철학과 윤리, 미덕을 가르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모든 이야기는 그 주인공과의 감정이입을 통해 자신의 삶에서 직접 체험하는 것 이상의 삶을 체험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많은 매체들(소설, 연극, 영화, 게임)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또한 어떤 이야기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서 시간이 흐름에도 끊임없이 반복되어 이야기된다. 이러한 형태의 가장 오래된 버전이 바로 신화라고 할 수 있다.
게임 역시 많은 부분 내러티브를 담고 있지만 실제로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내러티브 자체가 아니라 플레이하는 주체의 주관적 경험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매체의 경우 고정된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것을 감정이입을 통한 수용자의 경험으로 치환할 수 있었다면 게임의 경우는 체험이 이루어지는 공간 자체는 타인에 의해서 주어지지만 체험 자체의 세부사항은 플레이어의 주체적 행위가 만들어내게 된다.
작금의 에듀테인먼트를 지향하는 게임들은 사실 특정한 정보를 기억하기 위한 반복학습이 주는 지루함을 상쇄시키는 정도의 역할밖에는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고도화된 사회는 지식을 암기하는 것보다 정보의 창의적 활용을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변해가기 마련이다. 아직도 산업적 측면에서는 기능적 학습행위가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무게추는 점점 이동할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목수가 되려면 나무가 될 수 있어야 하고 대장장이가 되려면 쇠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게임 혹은 인터랙티브 미디어가 가진 강점이 이러한 것이다. 게임은 체험의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 무한한 가능성에 기반한다면 이론적으로는 어떠한 체험이든지 제공할 수 있다.
한자마루를 만든 에듀플로의 박광세 대표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초중학생 처럼 학습동기에 전무한 경우는 "재미"가 가장 크고 유일한 동기가 되며(그 외에는 또래집단의 호응도 포함될 수 있다) 대학생처럼 주체적 학습동기가 충만한 경우는 학습행위에 약간의 재미만 주어져도 크게 반응한다고 한다.
동기의 근간이 되는 세 가지 요소 - Autonomy, Mastery, Purpose 세 가지를 게임을 통한 학습에 적용해보자.
게임의 레벨 디자인에 적용한다면 아마 이 순서는 반대로 가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확실한 Purpose를 제공한 뒤, 그 다음에는 반복을 통한 Mastery를 성취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일정 수준의 Mastery를 획득한 뒤에는 Autonomy의 부분, 게임의 룰을 변형하거나 확장하는 것에 직접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비즈니스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이러한 동기 부여 이론이 MMORPG에서는 이미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기능적 학습 이외에 인문학적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 '윤리와 철학' 기타 고등학문에 영역에서의 게임 적용방식, 그리고 게임 내부에서의 가치판단의 문제가 어떻게 현실의 가치관에 연결이 될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기존의 교육이 일방적인 전달에 의한 학습이라면 게임을 통한 교육은 소통을 통한 학습이라는 말이 공감이 되었다.
그리고 게임에 대한 '신화학'적 접근에 대해서 공부하다 보니 이 두 가지가 이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카자와 신이치의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는 신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내용으로 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보다는 훨씬 쉬운 책이지만 그 내용의 깊이는 뒤지지 않는 것 같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줄곧 신화는 고대의 철학과 윤리, 미덕을 가르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모든 이야기는 그 주인공과의 감정이입을 통해 자신의 삶에서 직접 체험하는 것 이상의 삶을 체험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많은 매체들(소설, 연극, 영화, 게임)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또한 어떤 이야기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서 시간이 흐름에도 끊임없이 반복되어 이야기된다. 이러한 형태의 가장 오래된 버전이 바로 신화라고 할 수 있다.
게임 역시 많은 부분 내러티브를 담고 있지만 실제로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내러티브 자체가 아니라 플레이하는 주체의 주관적 경험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매체의 경우 고정된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것을 감정이입을 통한 수용자의 경험으로 치환할 수 있었다면 게임의 경우는 체험이 이루어지는 공간 자체는 타인에 의해서 주어지지만 체험 자체의 세부사항은 플레이어의 주체적 행위가 만들어내게 된다.
작금의 에듀테인먼트를 지향하는 게임들은 사실 특정한 정보를 기억하기 위한 반복학습이 주는 지루함을 상쇄시키는 정도의 역할밖에는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고도화된 사회는 지식을 암기하는 것보다 정보의 창의적 활용을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변해가기 마련이다. 아직도 산업적 측면에서는 기능적 학습행위가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무게추는 점점 이동할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목수가 되려면 나무가 될 수 있어야 하고 대장장이가 되려면 쇠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게임 혹은 인터랙티브 미디어가 가진 강점이 이러한 것이다. 게임은 체험의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 무한한 가능성에 기반한다면 이론적으로는 어떠한 체험이든지 제공할 수 있다.
한자마루를 만든 에듀플로의 박광세 대표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초중학생 처럼 학습동기에 전무한 경우는 "재미"가 가장 크고 유일한 동기가 되며(그 외에는 또래집단의 호응도 포함될 수 있다) 대학생처럼 주체적 학습동기가 충만한 경우는 학습행위에 약간의 재미만 주어져도 크게 반응한다고 한다.
동기의 근간이 되는 세 가지 요소 - Autonomy, Mastery, Purpose 세 가지를 게임을 통한 학습에 적용해보자.
게임의 레벨 디자인에 적용한다면 아마 이 순서는 반대로 가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확실한 Purpose를 제공한 뒤, 그 다음에는 반복을 통한 Mastery를 성취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일정 수준의 Mastery를 획득한 뒤에는 Autonomy의 부분, 게임의 룰을 변형하거나 확장하는 것에 직접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비즈니스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이러한 동기 부여 이론이 MMORPG에서는 이미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기능적 학습 이외에 인문학적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 '윤리와 철학' 기타 고등학문에 영역에서의 게임 적용방식, 그리고 게임 내부에서의 가치판단의 문제가 어떻게 현실의 가치관에 연결이 될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 프린지 시즌 1을 보고 - 엉뚱한 상상
- 분류없음
- 2009/09/13 00:40
- 인지, 프린지
'프린지'는 떡밥의 제왕 J.J. 에이브럼스 판 X-File로 불리는 SF드라마이다.
(주의 : 글의 내용상 미리니름이 산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로 아랫줄부터)
시즌 1 최대의 떡밥은 '매시브 다이나믹'의 Founder이자 월터 박사의 동료인 윌리엄 벨의 정체인데, 제왕님은 결국 '평행우주론'을 끌고 나오면서 또다른 떡밥을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이며 1시즌을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그보다 에이전트 '던햄'에게 행해진 실험 내용이 좀 더 관심을 끈다. '코텍시판'이라는 약물로 인간이 스스로 두는 '인지능력'의 제한을 풀어줌으로써 일종의 초감각을 지니게 하는 내용의 실험이다.
'인지의 한계가 세상의 한계다,'
오히려 철학과 인문학의 영역에서 나올법한 주제를 SF에 적용시킨 것도 재미있지만, 단지 그럴듯함을 넘어 통찰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구절이 아닐까 싶다. 사실 '별 쓸데없는' 취급을 받는 인문학이나 교양을 쌓아가는 일들은 수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가두어 별스런 '썰'을 풀어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미처 깨닫지 못한' 삶의 작은 단면을을 발견해가는 재미를 주기 때문임이 아닌가.
이런 사소한 '인지의 확장'이 마치 '존재의 확장'인 것과 같은 교묘한 착각을 가져다 주는데 이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라는 거다.
'코텍시판'이 시판되면 가장 들고 일어날 사람들은 소설가나 인문학자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
P.S.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비누, 삼푸, 화장품 등의 생활용품(이라 쓰고 화학약품이라 읽는,)들을 쓰지 않는 곳에 한동안 지내게 되면 일종의 '육감'이 발달한다고 한다. 상대방의 체취로 먼 거리에서 그 사람이 누군지, 기분은 어떤지 등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지의 확장이라는 개념은 단지 자동 필터링 장치를 좀 더 정교하게 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 나는 내가 낯설다 中
- 분류없음
- 2009/08/27 13:09
- 감정, 무의식, 심리학
비록 감정이 우리로 하여금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게 하고 옳지 못한 결정을 내리게 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사랑과 열정과 예술의 풍성함을 위하여 기꺼이 정밀도와 정확성을 희생하려 든다. 무미건조하고 감정이 없는 인조인간의 삶을 살기를 원하겠는가?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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